3화 — 감사(監査)는 발로 하는 것
은행에서 감사팀 선배가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장부는 거짓말을 해도, 창고는 거짓말을 못 해.'
엘리시아는 그 말을 곱씹으며 이튿날 아침 일찍 마구간으로 향했다. 장부에는 지난달 사료 대금이 두 번 지급되어 있었다. 같은 날짜, 같은 금액, 같은 상인. 실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8년 경력의 은행원은 '실수'가 같은 패턴으로 세 달 연속 반복되면 그것을 실수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구간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말들이 콧김을 뿜고, 마부들이 건초를 나르고 있었다. 엘리시아가 들어서자 모두가 일손을 멈췄다. 사흘 전 흑마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아가씨가, 그것도 '중2병'에 걸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마구간에 나타난 것이다.
"아, 아가씨. 혹시 그 흑마를 보러 오신 거라면……"
마구간지기 노인이 허둥지둥 다가왔다. 엘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료 창고 좀 보여 줘."
"……예?"
"사료 창고. 귀리랑 건초 쌓아 두는 곳."
노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창고로 안내했다. 엘리시아는 창고 안을 한 바퀴 돌며 귀리 자루를 셌다. 하나, 둘, 셋…… 마흔둘. 그리고 벽에 걸린 출납 판자를 보았다. 이번 달 들어온 귀리, 마흔 자루. 지난달 들어온 귀리, 마흔 자루.
장부에는 지난달 여든 자루 값이 지급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지난달에 사료 두 번 들어왔어?"
"두 번이요? 아닙니다요. 사료는 달마다 한 번, 초하룻날 들어옵니다. 30년째 그랬습지요."
엘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매에서 작은 양피지 쪽지를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노인이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가씨,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냐. 숫자 세는 연습 중이야."
"……아."
노인의 얼굴에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안쓰러움이 스쳤다. 엘리시아는 모른 척했다. 오해받는 건 익숙했다. 창구에서 '저 직원 너무 깐깐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으니까.
그 후 사흘 동안 엘리시아는 저택 곳곳을 돌아다녔다.
영지 보수비가 매달 금화 마흔 닢씩 나갔다는데, 정원사에게 물어보니 지난 1년간 고친 것은 온실 유리 두 장뿐이었다. 주방에 납품되는 향신료는 장부상 왕도에서 가장 비싼 상점 가격이었는데, 요리장은 "그런 귀한 건 구경도 못 해 봤다"며 손사래를 쳤다. 심지어 장부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하인 다섯 명의 급료가 꼬박꼬박 지급되고 있었다.
'유령 직원까지. 교과서적이네.'
엘리시아는 밤마다 쪽지들을 침대 밑 상자에 모았다. 증거는 쌓여 갔다. 문제는 그것을 정리할 시간과 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열세 살 아이의 몸은 생각보다 금방 지쳤고, 이 세계의 숫자 표기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리고 나흘째 밤, 문제가 생겼다.
"찾았다."
엘리시아가 침대 밑 상자를 열어 쪽지를 정리하던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클라리스가 문가에 서 있었다. 촛불에 안경알이 번쩍였다.
"요즘 매일 밤 뭘 숨기나 했더니." 클라리스가 성큼성큼 다가와 쪽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료 이중 지급, 3개월 연속, 금화 24닢.' '유령 하인 5명.' ……이게 뭐야?"
엘리시아는 잠시 고민했다. 거짓말을 할까. 중2병 놀이라고 둘러댈까. 하지만 클라리스의 눈은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수수께끼를 발견한 사람의 눈이었다.
'이 언니, 머리는 좋지. 그리고 무엇보다 입이 무거워. 엘프 귀 사건을 4년째 아무한테도 안 말한 사람이니까.'
"언니." 엘리시아가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집, 누가 돈을 훔치고 있어."
클라리스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쪽지를 내려놓고, 엘리시아의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누구?"
"아직 확실하진 않아. 근데 이 돈이 다 지나가는 사람은 한 명뿐이야."
"……바르톨로." 클라리스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 사람, 나 어릴 때 사탕 주던 사람인데."
"원래 횡령하는 사람들은 사탕을 잘 줘."
"그것도 산술 마법으로 알아낸 거야?"
"경험이야."
"열세 살이 무슨 경험이……" 클라리스는 말을 하다 말고 엘리시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됐어. 묻지 않을게. 대신 나도 끼워 줘. 나 글씨 정리하는 거 잘해."
엘리시아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었다. 전생에서 그녀에게는 '같이 하자'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좋아. 대신 비밀 엄수야."
"당연하지. 나 비밀 지키는 건 자신 있어."
"알아. 엘프 귀."
"……그 얘기 한 번만 더 하면 계약 파기야."
자매는 그날부터 밤마다 머리를 맞댔다. 엘리시아가 숫자를 셈하면 클라리스가 단정한 글씨로 옮겨 적었다. 클라리스는 이 세계의 회계 표기에 엘리시아보다 훨씬 밝았고, 엘리시아는 클라리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숫자를 배열했다. 날짜별, 항목별, 거래처별.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는 그동안 새어 나간 돈의 총액.
"금화…… 3,400닢." 클라리스가 그 숫자를 읽고는 입을 막았다. "이거면 작은 남작령 하나를 살 수 있어."
"이건 최근 3년 치만이야. 20년이면……"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부족했다. 이중장부의 '진짜 장부'. 이렇게 큰 돈을 빼돌리는 사람이라면 분명 자기만 보는 장부를 따로 두었을 것이다. 엘리시아는 그것이 어디 있을지 짐작하고 있었다. 집사 바르톨로는 매주 목요일 밤, 마구간 뒤편 마차 창고에 혼자 다녀오곤 했다. 하인들은 그가 새 마차를 점검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밤. 엘리시아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마차 창고로 숨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새 마차가 검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지난주 도착해 그녀가 감가상각을 물었던 바로 그 마차였다. 엘리시아는 촛불을 낮게 들고 마차 안을 더듬었다. 좌석 아래, 벽면, 바닥판……
"거기서 뭐 해."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 엘리시아는 하마터면 촛대를 떨어뜨릴 뻔했다. 돌아보니 창고 입구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열네댓 살쯤. 헝클어진 검은 머리에, 키에 비해 너무 큰 낡은 견습 기사복. 손에는 연습용 목검을 들고 있었다.
기억이 떠올랐다. 카이엘. 몰락한 백작가에서 왔다는 견습 기사. 무뚝뚝하고, 언제나 혼자 연습장에 남아 있는 아이.
"……산책."
"밤 열한 시에, 마차 창고에서, 마차 바닥을 뜯으면서?"
"달빛 산책."
"여기 창문 없는데."
엘리시아는 입을 다물었다. 카이엘은 목검을 어깨에 걸치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에 묘하게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소문 들었어. 셋째 아가씨가 머리를 다친 뒤로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고."
"주문 아니야."
"그럼 뭔데."
엘리시아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어차피 들킨 거, 쓸 수 있는 건 써야 했다.
"너, 바르톨로 좋아해?"
카이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견습 기사 급료가 세 달째 반만 나오고 있어. 집사님 말로는 공작가 사정이 어렵다고."
"그 돈, 사정이 어려워서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엘리시아가 마차 바닥판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 아래 있을 거야. 근데 나는 힘이 부족해."
잠시의 정적. 그리고 카이엘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목검 끝을 바닥판 틈새에 끼우고, 지렛대처럼 힘을 주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판자가 들렸다.
그 아래, 기름 먹인 천으로 꽁꽁 싼 가죽 장부 한 권이 있었다.
엘리시아는 장부를 펼쳤다. 촛불 아래 낯익은 숫자들이 보였다. 공식 장부와 같은 날짜, 같은 항목. 하지만 금액이 달랐다. 그리고 맨 오른쪽 칸에는 공식 장부에 없는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B.'
매달, 꼬박꼬박. 바르톨로의 머리글자.
"찾았다." 엘리시아가 속삭였다.
카이엘은 장부를 들여다보다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그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경계심. 그리고 아주 약간의 흥미.
"너…… 진짜 이상한 애구나."
"고마워."
"칭찬 아니야."
"알아. 그래도 고마워." 엘리시아는 장부를 망토 안에 품었다. "그리고 네 급료, 다음 달부터는 제대로 나오게 해 줄게."
카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창고를 나설 때, 아무 말 없이 촛불을 들고 저택 뒷문까지 앞장서 걸었다. 어두운 길에 돌부리가 있을 때마다 걸음을 늦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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