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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이 집, 곧 망합니다.

2화 — 공작님은 서명을 읽지 않는다

조회 3 약 6분

로젠하르트 공작 레오나르트는 키가 2미터에 가까운 거구였다. 북부 전쟁에서 오크 족장 셋의 목을 베었다는 전설의 주인공. 왕국의 기사들이 이름만 들어도 자세를 바로 한다는 '북부의 철벽'.

그 철벽이 지금 엘리시아의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꺽꺽 울고 있었다.

"우리 엘리…… 우리 아기…… 아빠가 그 말을 진작 팔아 버렸어야 했는데……"

"아버지, 저 괜찮아요."

"괜찮긴! 사흘을 누워 있었는데! 이 아빠는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잤다!"

"사실 주무셨어요." 클라리스가 수첩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둘째 날 밤에 복도 의자에서 코 골면서요. 집사가 담요 덮어 드렸어요."

"클라리스!"

엘리시아는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아빠가 아니었다. 헬멧을 쓰고 "금방 갔다 온다"며 손을 흔들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눈물로 범벅이 된 이 커다란 얼굴을 보고 있으니,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누군가가 자기 때문에 이렇게 우는 것을 본 게 언제였더라.

"레오."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방 안의 소란을 단번에 잠재웠다. 문가에 은회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공작부인 베아트리체. 엘리시아의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 미소 앞에서는 공작도 꼼짝 못 했다.

"아이가 이제 막 깨어났어요. 좀 쉬게 해 주세요."

"하, 하지만 베아……."

"레오."

"……알겠소."

북부의 철벽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일어났다. 언니들과 루루도 아쉬운 얼굴로 하나둘 방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공작부인은 침대맡에 앉아 엘리시아의 이마를 쓸어 넘겼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엘리시아."

"네, 어머니."

공작부인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 그림을 감상하듯, 천천히. 엘리시아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창구에서 수백 명의 고객을 상대해 봤지만, 이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아무것도 캐묻지 않겠다는 눈빛.

"……푹 자렴. 무슨 일이 있어도 넌 내 딸이란다."

공작부인은 그 말만 남기고 방을 나갔다.


그 후 일주일, 로젠하르트 저택에는 한 가지 소문이 돌았다.

'셋째 아가씨가 낙마 사고 이후 이상해졌다.'

증거는 차고 넘쳤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은식기를 들어 올려 뒷면의 각인을 확인하며 "순도 92.5퍼센트…… 스털링 실버네. 한 벌에 얼마지?"라고 중얼거렸다. 정원을 산책하다가 분수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유지 관리비가 월 얼마 나올까"라며 손가락을 접었다. 하녀가 새 드레스를 가져오자 원단을 문질러 보더니 "이거 몇 벌이나 맞추는 거야? 구입 벌당 할인은?"라고 물어 하녀를 울릴 뻔했다. 새로 주문한 마차가 저택 앞에 도착한 날에는 바퀴와 차체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저런 마차 한 대 가격은 얼마야? 그리고 매년 감가상각은?"라고 물어 마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단어들 말이야." 저녁 식사 후, 클라리스가 언니 이사벨라에게 수첩을 펼쳐 보였다. "분석해 봤는데, 일정한 패턴이 있어. '퍼센트', '감가상각', '유지비'. 전부 숫자와 관련된 말이야. 내 가설은 이래. 엘리는 머리를 다치면서 고대 산술 마법에 각성한 거야."

"클라리스, 그건 그냥……." 이사벨라가 이마를 짚었다. "그 나이 때 흔히 오는 병이야. 알지?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아무도 모르는 말을 지어내고."

"아, 그거." 열여섯 살 클라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열세 살 때 내가 고대 엘프 왕가의 잃어버린 후손이라고 믿었지."

"……너 그때 귀 끝에 밀랍 붙이고 다녔잖아."

"그건 잊어 줘."

그렇게 엘리시아는 저택 공인 '사고 이후 중2병이 온 셋째'가 되었다.


정작 엘리시아 본인은 그 소문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그녀가 파악한 사실들이 머릿속에서 불길한 경보음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이 집은 돈을 너무 많이 쓴다. 하인이 마흔 명이 넘고, 매주 연회 수준의 식사가 차려지고, 공작은 기사단 말을 사들이는 데 아낌없었다.

둘째, 그런데 아무도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귀족에게 돈 이야기는 천박한 것이라고 했다.

셋째, 그 모든 돈 관리는 단 한 사람, 20년 근속의 집사 바르톨로가 맡고 있다.

'자금 흐름을 아는 사람이 한 명뿐이고, 아무도 자금에 대해 감시를 하지 않는다.' 엘리시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천사를 노려보았다. '은행에서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사고 나기 딱 좋은 구조라고 해.'

그날 밤, 엘리시아는 슬리퍼를 끌고 집무실로 향했다.

공작의 집무실은 저택 2층 동쪽 끝에 있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북부의 철벽에게 자기 집무실을 털 간 큰 도둑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엘리시아는 촛대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 그 아래쪽 칸에 가죽 장정의 장부들이 연도별로 꽂혀 있었다. 엘리시아는 가장 최근 것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양피지 위로 빽빽한 숫자들이 촛불에 일렁였다. 처음 몇 장은 읽기조차 힘들었다. 이 세계의 숫자 표기와 화폐 단위가 아직 손에 익지 않았다. 금화 한 닢이 은화 스무 닢, 은화 한 닢이 동화 열두 닢. 그녀는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깃펜으로 여백에 환산표를 적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10분이 지나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20분이 지나자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30분이 지났을 때, 엘리시아는 장부를 덮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수입란과 지출란의 합계가 맞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맞았다. 지나치게 깔끔하게. 매달 끝자리까지 똑같이 떨어지는 '영지 보수비'. 같은 날짜에 두 번 지급된 '사료 대금'. 그리고 장부 맨 뒤에 끼워져 있던, 공작의 큼직한 서명이 들어간 문서 한 장.

[차용 증서 — 금화 상회] 원금: 금화 8,000닢 이율: 월 3할, 복리 담보: 로젠하르트 공작령 남부 곡창지대

엘리시아는 그 문서를 세 번 읽었다. 그리고 여백에 깃펜으로 숫자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월 30퍼센트. 복리. 1개월, 2개월, 3개월……

손이 멈췄다.

"……미쳤네."

13세 소녀의 입에서 나오기엔 지나치게 걸걸한 목소리였다.

"이 서류, 아빠, 아니 아버지는 읽어 보고 서명하신 거야?"

물론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오크 족장의 목을 베던 손으로, 집사가 내미는 서류에 "그래, 그래, 알아서 하게"라며 서명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다시 숫자를 셈했다. 이 이율이면, 그리고 이 장부의 새는 돈까지 더하면.

'3년. 길어야 3년이야.'

로젠하르트 공작가는 3년 안에 파산한다.

엘리시아는 천천히 장부를 원래 자리에 꽂았다. 촛대를 들고 집무실을 나서는 그녀의 얼굴에는, 8년간 창구에서 단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화가 난 얼굴. 그리고 아주 조금, 신이 난 얼굴.

'좋아. 지난 생엔 내 집 열쇠도 못 받아 봤어.'

복도 끝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졌다.

'이번 생엔, 이 집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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