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뱅크런
은방울 골목은 횃불로 대낮처럼 밝았다.
엘리시아가 마차에서 뛰어내렸을 때, 예금소 앞에는 이미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창구 직원 둘이 안에서 덧문을 붙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고, 손에 쥔 예금 증서를 흔들었다.
"내 돈 내놔!"
"공작가가 우리 돈으로 빚을 갚았다며!"
"예금소가 망한대! 내일이면 문 닫는대!"
엘리시아는 그 소리들 사이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주워 담았다. 창구 8년. 그녀는 이 장면을 알고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신입 연수 때 교재 맨 앞장에 실려 있던 흑백 사진. 은행 정문 앞에 끝없이 늘어선 사람들. 그 사진 아래 적혀 있던 단어.
뱅크런.
"무슨 소문이야?" 엘리시아가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며 직원에게 물었다.
"오, 오늘 저녁부터 돌기 시작했습니다. 공작가가 4년 전 금화 상회 빚을 갚을 돈이 없어서, 예금소를 차려 서민들 돈을 끌어모았다고요. 그 돈은 이미 다 빚 갚는 데 썼고, 금고는 텅 비었다고. 그리고……"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골목마다 뿌려졌습니다."
싸구려 양피지에 인쇄된 전단이었다. '로젠하르트 공작가 파산 임박 — 예금소 금고 바닥 드러나'. 그 아래에는 그럴듯한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예금 총액, 대출 총액, 그리고 금고 잔액. 모두 거짓이었다. 하지만 숫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숫자는 그 자체로 진실처럼 보였다.
엘리시아는 전단을 구겼다.
'숫자로 거짓말을 하는 놈이 있어.'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숫자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창유리에 손가락을 대고 웃던 매부리코의 남자.
"아가씨, 문을 열면 안 됩니다!" 직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저 사람들이 들이닥치면……"
"열어."
"예?"
"문 열어. 지금 문을 닫아 두면 사람들은 정말 돈이 없어서 닫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내일은 수천 명이 와."
엘리시아는 덧문을 직접 밀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사람들의 고함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녀는 계단도 없는 문턱 앞에, 맨 앞에 섰다.
"여러분!"
아무도 듣지 않았다.
"여러분!"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누군가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기, 닭튀김 영애다! 우리 돈 어디 있어!"
엘리시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창구에서 쓰던 목소리를 꺼냈다. 번호표 300번이 넘어가는 월말 오후, 대기실 전체에 들리도록 쓰던 그 목소리.
"번호표 뽑으세요!"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번호표.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지금부터 한 분씩 모시겠습니다. 줄을 서 주세요. 증서를 가져오신 분은 전부, 오늘 밤 안에 돈을 돌려드립니다. 한 닢도 빠짐없이."
"정말이야?"
"거짓말!"
"그럼 첫 번째 분, 앞으로 나오세요."
머뭇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세탁부 아주머니 하나가 쭈뼛쭈뼛 나왔다. 엘리시아는 그녀를 창구로 안내하고, 직접 의자에 앉았다. 증서를 확인하고, 장부를 펼치고, 금고에서 은화를 꺼내 세었다. 이자까지 정확하게. 그리고 아주머니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맡기신 돈 은화 세 닢, 이자 동화 두 닢입니다. 확인하세요."
아주머니는 손바닥 위의 은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소리쳤다.
"진짜 줘! 이자까지 줘!"
그 외침에 줄이 생겼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차례를 지켰다. 다섯 개의 창구가 쉬지 않고 돌아갔다. 엘리시아는 밤새 창구에 앉아 동전을 셌다. 손가락이 저려 오고, 목이 쉬어 갔다.
새벽 네 시. 엘리시아는 금고 문을 닫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클라리스가 촛불 아래에서 장부를 펼치고 있었다. 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엘리. 오늘 밤에만 예금의 2할이 빠져나갔어."
"알아."
"금고에 남은 건 지급준비금의 절반이야. 내일도 이 정도로 몰려오면 오후 전에 바닥나."
엘리시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금소의 구조는 단순했다. 예금자들이 맡긴 돈 가운데 3할은 금고에 남겨 두고, 7할은 시장 상인과 농부와 장인들에게 빌려주었다. 그 이자로 예금자에게 이자를 주었다. 은행이라면 어디든 그렇게 돌아갔다. 문제는, 모든 예금자가 한꺼번에 돈을 찾으러 오면, 세상 어떤 은행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빌려준 돈은 지금 대장간 화덕이 되어 있었다. 시장 노점의 차양이 되어 있었다. 농부의 씨앗과 쟁기가 되어 있었다. 그걸 하룻밤 사이에 다시 금화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레고르는 이걸 알고 있었어.'
소문 하나면 충분했다. 예금소를 쓰러뜨리는 데에는 칼도, 군대도 필요 없었다. 사람들의 불안만 있으면 됐다.
"대출금을 지금 회수하면……" 클라리스가 말을 꺼냈다가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되지. 그러면 빌려 간 사람들이 망해."
"응. 그럼 오토 할아버지가 했던 일을,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하는 거야."
두 자매는 말없이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문이 열리고, 이사벨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밤새 예금소 앞에서 기사들과 함께 군중을 정리하고 있었다. 드레스 자락은 진흙투성이였다.
"엘리. 밖에 이상한 사람들이 섞여 있어.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소리를 질러. '돈 다 떨어졌대', '내일은 문 안 연대'. 그리고 정작 자기들은 창구에 안 와."
"금화 상회 사람들이야." 엘리시아가 말했다. "불을 붙이고 다니는 거지."
"잡을까?"
"잡아도 소용없어. 소문은 이미 퍼졌어. 지금 필요한 건 범인이 아니라……"
엘리시아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문득 물었다.
"카이엘은?"
이사벨라와 클라리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저녁에 소문 듣자마자 어디론가 갔어." 이사벨라가 말했다. "배달 기사단 애들 몇 명 데리고. 너한테 전해 달라고 한 말이 있어."
"뭐라고?"
"'규칙 6번은 지킨다.'"
모두 무사히 돌아올 것.
엘리시아는 그 말을 곱씹었다.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바보."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줄을 그어 지웠던 그 글씨가 떠올랐다.
옆에 없으면 불안함.
지금, 정말로 불안했다.
동이 터 왔다. 창밖으로 은방울 골목이 보였다. 밤새 줄어들었던 줄이, 해가 뜨자 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골목 끝을 지나, 광장까지. 어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다.
클라리스가 숫자를 셈하다 펜을 내려놓았다.
"엘리. 저 줄이면, 정오 전에 금고가 비어."
엘리시아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 줄 속에는 엄마 신발을 사고 싶은 아이가 있을 것이었다. 딸 혼수를 모으는 어머니가, 대장간 화덕을 꿈꾸는 견습공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레몬 냄새가 나는 앞치마를 두른 노인도.
그들은 그녀를 믿고 돈을 맡겼다. 지금 그들이 겁에 질린 것은, 그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돈으로 막을 일이 아니었다.
믿음으로 막아야 했다.
엘리시아는 일어섰다. 그리고 창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밤새 동전을 세느라 퀭해진 눈. 헝클어진 금발. 그리고 그 안쪽 어딘가에, 26년을 계산하며 살아온 은행원의 눈빛이 있었다.
"언니들."
이사벨라와 클라리스가 그녀를 보았다.
"오늘 정오에, 예금소 앞에서 발표를 할 거야. 그리고 그 전에, 아버지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뭔데?"
엘리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로젠하르트 공작가 보물고를, 통째로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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