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동화 한 닢 통장
로젠하르트 예금소는 왕도 은방울 골목, 로젠 치킨 본점 바로 옆 건물에 문을 열었다.
엘리시아는 건물을 고를 때 딱 하나만 고집했다. 1층 창구를 길가 쪽으로 낼 것. 그리고 창구 앞에 문턱을 두지 말 것.
"금화 상회는 대리석 계단이 일곱 개예요." 그녀가 클라리스에게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 계단 앞에서부터 겁을 먹어요. 우리 예금소는 맨발로도 걸어 들어올 수 있어야 해."
창구는 다섯 개. 창구 직원들은 엘리시아가 직접 뽑아 석 달 동안 가르쳤다. 대부분 글을 아는 평민 출신이었고, 그중 둘은 배달 기사단에서 다리를 다쳐 말을 탈 수 없게 된 소년들이었다. 엘리시아는 그들에게 계산법보다 먼저 이것부터 가르쳤다.
"손님이 글을 모르면, 서류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어 줘. 손님이 '네'라고 할 때까지. 그리고 손님이 이해 못 한 것 같으면, 다시 읽어 줘."
"몇 번이나요?"
"열 번이라도."
그녀는 오토 할아버지의 손도장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개업 날 아침. 예금소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구경꾼은 많았다. 길 건너편에서, 골목 모퉁이에서, 로젠 치킨 줄에 선 채로, 사람들은 새로 생긴 건물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예상했어." 엘리시아가 2층 창문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돈을 맡긴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이 사람들한테 돈은 침대 밑 항아리에 숨기는 거야."
"그럼 어떡해?" 클라리스가 물었다.
"첫 고객이 없으면, 첫 고객을 만든다."
"로젠 치킨 첫날이랑 똑같은 말이네."
"영업의 기본은 안 변해."
그때였다. 창구 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시아와 클라리스가 동시에 계단을 내려갔다.
예금소 한가운데에, 허리 굽은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로젠 치킨의 앞치마를 두른 채로. 레몬 냄새가 났다.
"오토 할아버지?"
"아가씨." 오토가 수줍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꺼냈다. "이거, 맡기러 왔습니다."
창구 위에 천 주머니가 놓였다. 짤랑. 은화 몇 닢과 동화 한 줌이 쏟아져 나왔다.
"레몬주스 만들면서 2년 동안 모은 겁니다. 아가씨께 빌린 은화 서른 닢은 작년에 다 갚았고요. 이건 남은 거." 오토가 손가락으로 동전들을 가지런히 모았다. "우리 마리 묘비를 하나 해 주고 싶어서 모으는 중인데, 침대 밑에 두니까 밤마다 도둑 들까 봐 잠이 안 와서요. 아가씨가 하는 곳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엘리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구멍에 또 무언가가 걸렸다.
그녀는 창구 안쪽으로 들어가, 직원 대신 직접 의자에 앉았다. 8년 동안 앉았던 그 자세 그대로. 등을 펴고, 입꼬리를 올리고.
"고객님, 어서 오세요. 로젠하르트 예금소입니다."
전생의 마지막 날 이후로 처음 하는 말이었다. 이상하게 목소리가 떨렸다.
엘리시아는 동전을 하나하나 셌다. 은화 일곱 닢, 동화 마흔세 닢. 그리고 예금 증서를 꺼내,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었다.
"맡기신 돈은 은화 일곱 닢과 동화 마흔세 닢입니다. 1년 동안 맡기시면 맡기신 돈에 한 할(10퍼센트)의 이자가 붙습니다. 언제든 찾으러 오시면, 그날까지의 이자를 계산해서 돌려드립니다. 이 증서를 잃어버리셔도, 저희 장부에 할아버지 이름이 적혀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해하셨나요?"
오토는 눈을 깜빡였다. "돈을 맡기는데…… 돈을 더 준다고요?"
"네."
"제가 드리는 게 아니라, 받는 거고요?"
"네. 할아버지 돈을 저희가 잠깐 빌려 쓰는 거니까요. 빌려 쓰면 이자를 드려야죠."
오토는 한참 동안 증서를 내려다보았다.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맨 위에 찍힌 장미 문장과 자기 이름 자리에 찍힌 손도장을 몇 번이고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평생…… 돈 빌리러만 다녔지, 돈 맡기러 온 건 처음입니다."
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엘리시아는 창구 너머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저희 첫 번째 고객이에요. 통장 번호 1번."
그날 오후, 오토는 로젠 치킨에 돌아가 레몬을 짜면서 손님마다 붙잡고 자랑을 했다. 돈을 맡겼더니 돈을 더 준다더라, 공작가 아가씨가 직접 세어 주더라, 증서를 열 번이나 읽어 주더라. 그 이야기를 들은 손님들이 하나둘, 레몬주스 잔을 비우고 옆 건물로 향했다.
첫날 예금자는 열일곱 명이었다. 대부분 동화 몇 닢이었다.
일주일 뒤에는 백 명이 넘었다. 시장 상인, 하녀, 마부, 세탁부, 대장간 견습공.
한 달 뒤, 예금소 앞에는 줄이 생겼다.
"동화 한 닢도 받아요?"
어느 날 창구 앞에, 열 살쯤 된 남자아이가 까치발을 하고 서 있었다. 꾀죄죄한 얼굴에, 손에는 동화 한 닢을 꼭 쥐고 있었다.
창구 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엘리시아를 돌아보았다. 엘리시아가 다가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받아. 동화 한 닢도."
"정말요? 근데 이자가 얼마 붙어요?"
"1년 맡기면…… 동화 한 닢의 10분의 1."
"그럼 0이잖아요."
"맞아. 근데 다음 달에 또 한 닢 맡기고, 그다음 달에 또 한 닢 맡기면, 언젠가는 이자가 생겨. 그리고 그 이자에도 이자가 붙어." 엘리시아가 웃었다. "그걸 복리라고 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마법이야. 이번엔 네 편에 서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동화 한 닢을 창구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엄마한테 신발 사 주고 싶어요. 엄마 신발 밑창이 다 떨어졌어요."
엘리시아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예금 증서 맨 위에, 그녀가 직접 이름을 적어 넣었다.
'적금 — 목표: 엄마 신발.'
그날 이후 예금소에는 새로운 상품이 생겼다. 매달 정해진 날에 정해진 금액을 맡기면 조금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상품. 그리고 증서 맨 위에 목표를 적어 주는 상품. 엘리시아는 그것을 '적금'이라고 불렀다.
엄마 신발. 딸 혼수. 대장간 화덕. 아내 묘비. 증서 맨 위에 적힌 목표들을 하나씩 읽으며, 엘리시아는 가끔 혼자 웃었다.
전생의 그녀도 매달 적금을 부었다. 목표란에는 언제나 같은 말을 적었다. '내 집.'
이번 생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표를 지켜 주고 있었다.
석 달 뒤. 금화 상회 왕도 본점, 가장 안쪽 방.
"예금자가 3천 명이 넘었습니다, 남작님."
부하의 보고에 그레고르 남작은 손가락의 반지를 하나씩 돌렸다.
"그리고 그 돈으로, 1할 반 이자에 돈을 빌려준답니다. 시장 상인들이 우리 상회 대신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서부와 북부의 사채 회수율이 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월 1할 반이라." 그레고르가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로는 장사가 안 될 텐데. 닭튀김 영애가 셈을 잘못했군."
"그게…… 연 1할 반입니다. 월이 아니라."
반지를 돌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연…… 1할 반?"
"예. 그리고 예금자들에게는 연 1할을 준답니다. 빌려줄 때는 연 1할 반을 받고요. 그 차이로 운영한다고……"
그레고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갔다. 창밖으로 은방울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저 멀리, 장미 간판 아래로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그 계집애를 믿는다는 거군."
"예. 오토라는 노인 이야기가 퍼진 뒤로……"
"믿음." 그레고르가 창유리에 손가락을 댔다. 장미 간판 위로,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미끄러졌다. "믿음으로 쌓은 건, 믿음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지."
그는 돌아섰다. 입가에, 오랜만에 진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소문을 하나 만들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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