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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이 집, 곧 망합니다.

프롤로그 — 초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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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이 상품은 중도 해지하시면 약정 이율의 절반만 적용됩니다."

오늘만 열네 번째로 한 말이었다. 서윤희는 입꼬리를 정확히 2밀리미터만큼 올린 채 창구 너머 중년 남자에게 해지 신청서를 내밀었다. 남자는 투덜거리며 서명했고, 윤희는 도장을 찍었다. 쾅. 그 소리가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입행 8년 차. 스물여섯. 동기들은 그녀를 '서 계산기'라고 불렀다. 칭찬인지 놀림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둘 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윤희의 인생은 늘 계산이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그녀의 집은 동네 어귀의 작은 치킨집이었다. 기름 냄새가 밴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튀김옷을 입히면, 아빠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우리 윤희, 아빠 금방 갔다 온다!" 그 말은 아빠가 하루에도 스무 번씩 하는 인사였고, 어느 비 오는 금요일 밤에는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신호를 무시한 승용차였다고 했다. 경찰 아저씨가 무언가 길게 설명했지만, 열 살 윤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가게를 혼자 지켰다. 새벽까지 닭을 손질하고, 낮에는 배달 대행을 불러 주문을 돌렸다. 그리고 윤희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봄, 엄마는 가게 바닥에 쓰러졌다. 급성 백혈병. 병원비는 가게를 삼키고, 보증금을 삼키고, 엄마가 몰래 들어 두었던 윤희 명의의 적금 통장까지 삼켰다. 그러고도 엄마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윤희를 데려간 사람은 엄마의 여동생인 이모였다.

이모네는 넉넉하지 않았다. 방 두 칸짜리 빌라에 이모부와 사촌 동생 둘. 윤희에게는 거실 한쪽에 커튼을 친 공간이 주어졌다. 이모는 그녀를 특별히 아끼지도, 구박하지도 않았다. 밥때가 되면 밥을 차려 주었고, 학원비 이야기가 나오면 한숨을 쉬었다. 윤희는 그 한숨의 무게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문계 대신 상업고등학교를 택했다.

"너 공부 잘하잖아. 아깝지 않아?"

담임의 말에 윤희는 웃었다. 아까운 건 시간이었다. 빨리 돈을 벌고, 빨리 나가는 것. 그게 이모에게도 자신에게도 가장 이율 높은 선택이었다.

고3 가을, 시중 은행 고졸 공채에 합격했다. 첫 월급을 받던 날 그녀는 보증금 300만 원짜리 원룸을 계약했고, 이모에게 30만 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이모는 잠깐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받았다. "밥은 잘 챙겨 먹어라." 그게 전부였다. 윤희는 그 정도가 딱 좋았다.

그 후 8년. 그녀는 취미가 없었다. 여행도, 연애도, 비싼 커피도 없었다. 월급날이면 급여의 70퍼센트가 자동으로 적금과 청약 통장으로 빠져나갔다. 퇴근길 편의점 도시락과 유튜브 재테크 채널이 하루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청약홈] 서윤희 님, ○○시 △△ 아파트 59㎡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문자를 받은 순간, 윤희는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24평도 아닌, 지방 소도시의 작은 아파트였다. 그래도 거기엔 그녀의 이름이 적힌 문이 있을 것이었다. 누구의 거실 한쪽도, 누구의 커튼 뒤도 아닌.

'입주하면 식탁을 사야지. 엄마가 쓰던 거랑 비슷한 걸로.'

그날 이후로 윤희는 퇴근길에 가구 쇼핑몰 앱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그랬다. 횡단보도 앞, 원목 4인용 식탁 사진을 확대해 보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초록불.

윤희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발을 내디뎠다. 서너 걸음쯤 갔을까. 오른쪽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하얀 1톤 트럭이 이미 눈앞에 있었다. 운전석의 남자가 핸들을 붙든 채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발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밟아도, 밟아도, 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아, 이건 계산에 없었는데.

그것이 서윤희가 이 세상에서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식탁…… 아직 결제 안 했는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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